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5031815235394304
뿌리깊은 민주주의와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연대하고 투쟁해야 한다. 지배세력은 시대를 초월하여 협력하며 공고한 방어벽을 쌓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촛불 항쟁의 성과에 대한 실망으로 좀처럼 살아나지 않던 불이 이번에도 발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왜 우리는 실망하고도 또다시 연대하며 싸울 수 있는 것일까?
100여 년 전 한반도에서 처음 만들어진 전국 단위 자율 노동단체가 새로운 시민으로 등장한 노동자에게 강조한 '덕목'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최초 전국 자율 노동단체 '조선노동공제회' 창립
조선노동공제회는 3‧1운동 다음 해인 1920년 4월에 노동자를 포함한 언론인, 교육자, 변호사 등에 의해 창립되었다. 창립을 주도한 그들은 1907년 설립된 신민회(新民會) 계열로서 1909년에 조직된 합법적 청년단체인 청년학우회(靑年學友會)와 비합법적 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단(大東靑年團)의 회원이었다. 대동청년단은 국권 회복을 목표로 활동했는데, 1911년 신민회 사건 등으로 활동이 크게 위축된 상태였다.
그러나 그들은 3‧1운동 직후부터 비공식 집회를 계속 개최하여 '노동문제연구회(勞動問題硏究會)'를 조직하였다. 이 연구회가 조선노동공제회의 기반이 되었다. 조선노동공제회 활동은 창립 당시에는 지식층과 경성에 있는 본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노동자를 중심으로 조직된 전국 각지의 기존 노동단체 또는 새로운 단체가 지부로 가입하기 시작한 뒤에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활동으로 조선노동공제회 회원 수가 해산 직전인 1922년에 15,000명에 이르렀다.
조선노동공제회 기관지 <공제(共濟)>는 한글 한자 병용이고, 창간호(1920년 9월, 170쪽), 제2호(1920년 10월, 134쪽), 제7호(1921년 4월, 94쪽), 제8호(1921년 6월, 128쪽)만 현재 남아있다. 제3호부터 제6호까지는 총독부가 검열하여 발행을 금지했다.1) 하지만 남아있는 <공제>의 내용만 살펴봐도, 우리나라 최초 전국 노동자 자율단체의 주장과 활동 취지를 상당 부분 알 수 있다.
'활동사항 > 교육사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동공제 기본교육 상반기 일정 (0) | 2025.03.21 |
---|---|
[2025 헌법읽기 공부모임] (0) | 2025.03.14 |
노동공제 온라인 기본교육 (0) | 2025.03.11 |
2025 미션 비전 수립 워크샵 진행 (0) | 2025.02.12 |
2025 협동조합 원칙 강독 모임 (모집 중) (0) | 2025.02.12 |